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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Thought & Sentiment

랄프 왈도 에머슨: 자기신뢰 Self-Reliance

 

작가: 랄프 왈도 에머슨 / Ralph Waldo Emerson

옮김: 강형심

제목: 세상의 중심에 너 홀로 서라 / Self-Reliance

 

 

에이전시에서 일하던 때 상사와의 면담 중 속상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Such a disparity."

 

Disparity..

중학교, 고등학교 때쯤 외웠던 단어인 것 같다.

꽤 쉬운 단어였는데,

하필 해외에서 완벽한 상황을 만나 정확한 용법으로 맞닥뜨렸다.

 

참 쓰렸다.

 

내 퍼포먼스가 이력서나 인터뷰에 비해 덜 빛 났나 보다.

속상하지만 사실이었다.

영국 사회에도, 회사에도, 적응의 시간이 더 필요하단 걸 알았기에 동의하진 않았다.

지난 이력과 인터뷰에 거짓이 있었던 것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티를 낼 순 없었다.

적어도 당시에는 그가 옳았다.

인터뷰 때 그가 꽤 감명받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나를 믿지 못한다는 건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프고 쓰라린 상태인 것 같다.

타인으로 인해 실망하거나 상처받는 것보다 더 가혹한 상황.

나를 스스로 가해하는 상태.

 

You don't beat yourself up.

한때 지인에게서 자주 들은 말이다.

나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할 수 없을 거라 믿고,

나를 스스로 옥죄이던 때.

내 의식의 저편,

가장 안전한 곳이라 착각한 그곳에 나를 가두고,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던 때.

잘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고,

잘했던 과거를 기억하며,

사뿐한 Landing을 원했지만

엄습하는 불안 속에 실상은 완벽한 Falling이 된 때.

모두가 보는 가운데 보기 좋게 계단형 강의실에서 단상 앞으로 굴러떨어진 것 같던 때.

 

그 와중에 애써 감추고 싶었던 마음.

제 머리만 모래로 박으면 보이지 않는 거라, 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닭처럼

모두의 눈에 선했지만 나는 애써 피하고 있던 내 모습.

'왜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는 걸까..'

창피함. 초라함. 비참함.

 

하필이면 가장 완벽한 가면을 써야 하는 곳에서 들켜버렸다.

내 어설픈 가면은 그의 집게손가락에 콕 집혀 들춰졌다.

발가벗겨진 느낌. 반복되는 자책.

 

그는 내게 회복탄성력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맞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상사가 얘기하니 맞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제자리를 찾아갔다.

패닉 상태를 지나 천천히 적응해갔다.

언제나 썼던 단순한 방법을 이용해.

 

우선 상사로부터 사무실 키를 받았다.

밤길이 무서워 더는 안되겠다 싶을 때까지 일했다.

하지만 늦은 밤 Old Street은 꽤 무섭기에 전략을 바꿔

매일 밤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C가 사무실을 떠날 때 따라나섰다.

소통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그를 많이 의지했다.

 

어떤 때는 4시, 어떤 때는 5시.

두 룸메이트의 사이 중간 방을 쓰던 나는 그녀들이 깨지 않게 조용히 책상에 앉았다.

어떤 때는 Swiss Cottage에서 내가 가장 먼저 불을 켜는 것 같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가장 편안했다.

 

정직한 이메일과 데이터베이스 로그 덕분에

나는 에이전시 내 가장 이상한 노동자로 소문이 났지만

그냥 계속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단순하고 무식하게.

 

 

회사를 떠난 지 꽤 되었는데 Emotional baggage 가 남았나 보다.

에머슨의 글을 읽다 보니 Hannah가 떠오른다.

상사도 옳았지만, 그녀가 더 맞다는 생각이 든다.

 

긴 터널에 갇힌 것 같던 때,

다시는 발현되지 않기를 바라던 숨 막힘이 다시 도졌을 때,

지금 생각해보면 (상기 사실을 절대 알 리 없지만) 꽤 인간적이었던 상사가

내가 그나마 마음을 터놓을 수 있을 거라 짐작한 Hannah에게 대화를 권한 모양이다.

 

Hannah는 처음 에이전시 일을 가르쳐준 선배다.

내 경험상 런던의 직장인들은 상당히 차갑고 사적 만남을 기대하기가 어려운데

그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잔하자는 말을 건네준 동료였다.

설사 상사의 부탁으로 성사된 자리었을지언정 신경 써준 그녀가 고마웠다.

 

우리는 점심시간 때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같이 펍에 가 (술 못 먹는 나 때문에) 주스를 마시기도 했다.

 

Hannah는 수시로 내게 어떻게 지내고(적응하고) 있는지 묻곤 했는데,

내가 꽤 안정을 찾았을 때쯤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Hannah: So, how are you getting along?

나: 머쓱하게 웃으며 I think I'm doing alright.

Hannah: Do you now believe that you can do this?

나: 다시 한번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Yes.

 

그녀가 옳았다.

내게 필요한 건 나를 믿는 마음이었다.

 

호기롭게 런던으로 왔지만 (아마도 그렇게 보였겠지만),

나는 못내 소심했고, 두려웠고, 그 와중에 오만했다.

 

잘해야 한다는 욕심,

한때 잘 나갔다는 오만함,

불만족스러운 타이틀,

동시에

부족한 영어로 인한 불안함,

들리지 않던 영국 악센트로 인한 자괴감,

콜포비아,

어색하고 불편한 사무실,

결여된 자신감,

믿을 수 없었던 난독증,

끝없는 위축.

 

이 모든 잡념과 불안, 걱정에 쫓길 때면

보이는 그럴듯한 요소,

건물 내 유일한 동양인이라는 사실,

하지만 그로 인한 어떠한 불합리함도 없었던 사실 뒤로 숨어

나는 이방인이라며 스스로 부끄러운 상황을 만들었다.

 

그 어떤 것도 잘할 수 없는 정신 상태.

당연했다.

 

내가 선택했던 단순 무식한 해결책은 건강한 자기 존중에서 나온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와장창 깨지고 우당탕 탕인 몇 달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자연스레 적응해가면서,

Hannah와 상사의 도움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꽉 막혔던 마음에 공기가 통하기 시작한 것 같다.

다시 집중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끔.

 

마음속 불안과 잡념이 끊이지 않았을 때

누군가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내 스스로 마음에 공기를 불어 넣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더 원활하게 덜 아프게 더 빠르게 안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설프고 못난 내 모습도 나의 일부로 인정하고

과하게 자책하거나 나를 함부로 깎아내리지 않는 것.

에이전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6개월이 필요하다고 얘기한 상사의 말처럼

겸손한 태도로 나아가는 것.

동시에 쉽지 않지만, 나에 대한 존중과 신뢰로 내면을 단단히 무장하는 것.

한 번씩 깊이 심호흡하고 여유를 갖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믿는 것.

 

 

학습된 트라우마처럼 Falling은 여전히 무섭고, 나를 움츠러들게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해낼 수 있음을 상기시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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